눈사람 자살 사건, 최승호

haomoondo 2024. 11. 14. 00:38

2023.08.24

아래는 인상 깊었던 시들.

'눈사람 자살 사건'은 이미 너무 유명해서 안 넣음.


비누로 만든 교회

비누로 만든 교회가 있었다. 사람들은 거기서 비누 거품을 일으키며 죄의 때를 씻을 수 있었고, 난장이처럼 키 작은 성자들은 기꺼이 남의 때를 밀어주면서 비누처럼 점점 녹아갔다. 교회는 갈수록 닳아 작아졌고 나중에는 죄와 함께 사라졌다.

교회를 돌로 지은 뒤부터는 죄의 때를 씻으러 가도 온몸이 쓰라리기만 했다. 키 큰 성직자들은 근엄했다. 그들은 돌의 교회에 석상처럼 서 있었다. 갈수록 돌의 교회는 기암괴석들처럼 불어났고 나중에는 폐허가 된 공중목욕탕처럼 관광객들이 찾는 텅 빈 명소가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말하였다 비누로 만든 교회의 시절에는 성자들이 있었으나 돌의 교회에는 성직자들만이 있었다고.

동냥

처음에는 세 발 달린 개를 끌고 동냥을 했다. 구걸하는 거지가 아니라 절뚝거리는 개가 불쌍해서 사람들은 동냥 그릇에 동전을 넣어주었다.

봄이 오나 두 발 달린 개를 끌고 동냥을 했다. 비참한 개, 어떤 소녀는 울면서 동냥 그릇에 동전을 넣어주었다.

여름이 되자 발 하나 달린 개를 끌면서 동냥을 했다. 비참할수록 동전이 수북하게 쌓였고, 가을이 오자 발이 없는 개를 끌면서 동냥을 했다.

다시 봄이 오나 애꾸눈에 발이 없는 개를 끌고 동냥을 했다. 여름이 오자 두 눈이 다 먼 개를 끌고 동냥을 했다. 가을이 되면서 붕대로 싸맨 개를 끌고 동냥을 하는데 한 아이가 물었다.

"아저씨, 그게 무슨 자루예요?"

거지가 대답했다.

"이건 개란다. 아주 불쌍한 개지. 다리도 하나 없고 눈도 다 멀었지만 밥은 먹는단다. 그러니 너도 동전을 보태렴."

아이가 거지의 뺨을 떄렸다.

고슴도치 두 마리

고슴도치 두 마리가 가시를 상대방의 몸에 찌른 채 피투성이가 되어 함께 죽어있었다. 그들은 서로 너무 사랑했던 모양이다.

코뿔소의 선택

맹수가 되려면 날카로운 이빨과 억센 발톱을 지녀야 하고, 순한 짐승이 되려면 뿔을 가져야 한다.

뿔이냐 이빨이냐. 코뿔소가 아직 뿔이 없었던 시절에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육식을 하려면 이빨을 키워야 했고 초식을 하려면 뿔을 세워야 했던 것이다.

풀이냐 고기냐. 뿔이 아직 없었던 시절에 코뿔소는 무엇을 먹고 살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판단이 잘 서지 않아 산속 스님의 생활과 골짜기에 사는 속인의 삶을 관찰해 보았다.

스님들은 비록 머리에 뿔은 없었으나 평화롭게 보였고, 속인들은 야수의 이빨은 없었으나 이해득실로 얽혀 늘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코뿔소는 스님의 삶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머리에 뿔 얹은 다른 초식동물들과는 달리 고독의 상징처럼 코 위에 뿔을 세우기로 했다.

나중에 석가 노인이 코뿔소의 선택을 기뻐하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심판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눈사람을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개중에는 나무 십자가를 짊어진 채 비틀거리는 눈사람에게 돌멩이를 던지거나 침을 뱉으며 욕설을 퍼붓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기독교인들이었다.

"저 눈사람은 자신의 창조주가 어린이라고 주장했다는군요. 어린이가 바로 하나님이며 다른 신은 없다는 거죠."

"기독교인들이 화를 낼 만도 하군요."

"결국 신성 모독죄로 판결이 난 겁니까?"

"사형감이죠."

"순교로써 눈사람 성인이 하나 나타나게 되겠군요."

"그런데 제자가 없다지요, 아마."

"종교가 되기는 틀렸네요. 제자들이 있어야 신비화시키고 우상화시킬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교회도 없었겠네요. 눈사람을 기념하는 교회를 누가 짓겠습니까."

"처형은 망나니들이 하나요?"

"칼로는 잘 안 죽을 것 같아서 화형을 시킨답니다."

"김이 나겠군요."

"부활할지도 모르죠."

"부활한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눈이 올 겁니다."

"재림이 이루어지는 것이군요."

"눈사람의 재림으로서 눈이 내리는 거죠."

"생각만 해도 아름답군요. 재림이라는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했는데."

"자, 처형장까지 따라가 봅시다."

"그럽시다. 불 속에서 눈사람이 웃는 모습을 지켜봐야죠."

허공이 꿈을 꾸고 있었다. 온 우주가 그의 꿈속에 있었다. 별들도 꿈을 꾸고 있었고 사람도 짐승도 곤충도 저마다 꿈을 꾸고 있었다. 허공이 꿈에서 깨어나자 아무것도 없었다. 온 우주가 텅 비어 고요하기만 했다.

“이 경지는 나 홀로 적막하구나.”

허공은 텅 빈 고요에 머물기 싫어서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어지럽게 펼쳐지는 꿈을 다시금 영화 보듯 구경하는 것이었다.

흑국의 슬픔

초가 가는 곳마다 빛이 있었다. 흑국 사람들은 초를 성스럽게 예우했으나 자신이 초가 되려고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초는 빛을 뿜었으나 자비심 때문인지 눈물을 흘리며 늘 우는 것 같았고, 헌신적으로 녹아 일그러지는 모습이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초가 죽은 뒤에도 초를 흉내내는 사람 하나 없었다.

흑국이 다시 어두워지자 이번에는흑귀자라는 흡혈박쥐가 나타나 흑국 사람들을 통치하며 피를 빨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흑귀자의 무리가 얼마나 불어났는지, 누가 흑귀자의 무리에 피를 빨리다 죽었는지, 뭐가 뭔지,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횡설수설하는 무성한 소문 속에서 흑국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흑귀자의 배를 피로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 바로 흑국의 기나긴 슬픔이다.

할미꽃

봄날, 무덤 위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할미꽃에게 햇살이 물었다.

"할매, 할매는 왜 무덤만 보고 계십니까?"

할미꽃이 대답했다.

"무덤 속의 망자가 봄이면 꽃을보고 싶어 하는데 꽃들은 다 망자를 외면한 채 하늘을 보고 있다오. 그래서 내가 볼품없는 꽃이긴 하지만 누워 있는 망자가 나라도 쳐다보라고 이렇게 얼굴을 숙이고 있는 거랍니다."

열등감

황소개구리에 놀란 도룡뇽들이 바위 그늘에 모여서 깨알만 한 심장을 할딱이며 말했다.

“우리 조상님은 공룡이다.”

물 위에 쓰는 우화

글을 쓰고 싶을 땐 강가로 나가 흐르는 물 위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던 다올 씨가 있었다. 그는 강가에서 혼자 슬퍼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였으나 우화집 한 권 내지 않았기 때문에 함께 웃은 독자도 없고 함께 눈물 흘린 독자도 없는 영원한 무명작가였다.

다올 씨가 죽고 나서 세상에 그의 기이한 행동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소문에 헛소문이 덧보태져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올 씨가 살던 마을을 찾게 되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글을 썼던 개야강은 관광지가 되었으며 작가의 집은 명소가 되었다. 주위에는 작은 호텔들과 음식점들이 들어섰고 기념품 가게들도 생겨났다.

관광 안내원들도 나타났다. 그들은 어찌된 일인지 앵무새들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 개야강이 바로 다올 씨의 책입니다. 물의 책, 혹은 물의 우화집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글씨가 보이지는 않지만 이 흐르는 물에 숱한 우화들이 녹아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다올 씨가 강으로 내려오면 낚시가 전혀 안 됐다고 합니다. 슬픈 우화를 쓸 때면 물고기들이 슬퍼하여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우스운 우화를 쓸 때는 물고기들이 입을 벌리며 물 위로 튀어 올랐다는군요. 물고기들만이 그의 독자인 셈이었죠. 아름답지 않습니까. 전해 오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시는 '심판'이랑 '물 위에 쓰는 우화'!

왜 좋은지 설명은 못 하지만 좋음.

그... 그 이런 게 좋아!

이 거지같은 어휘 실력과 사고가 향상되어 이게 왜 좋은지 어떻게 좋은지 설명 가능한 그날까지 독서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