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11.27 : ~여우난골족
- 2024.11.30 : ~끝
친구가 고른 책. 하지만 전에 읽었던 백석 시인의 시집이 좋았기 때문에 기대된다!
추일산조 秋日山朝
아츰볕에 섶구슬이 한가로이 익는 골짝에서 꿩은 울어 산울림과 장난을 한다.
산마루를 탄 사람들은 새꾼들인가
파란 한울에 떨어질 것같이
웃음소리가 더러 산밑까지 들린다
순례 중이 산을 올라간다
어젯밤은 이 산 절에 재가 들었다
무리돌이 굴어나리는 건 중의 발굼치에선가
광원 曠原
흙꽃 니는 이른 봄의 무연한 벌을
경편철도輕便鐵道가 노새의 맘을 먹고 지나간다
멀리 바다가 뵈이는
가정거장假停車場도 없는 벌판에서
차車는 머물고
젊은 새악시 둘이 나린다
→ 헐… 흙꽃이 흙먼지야? 시적이야…ㅠ
흰밤
녯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 예? 이거 뭔가 뒷배경이 있을 것 같다. 찾아봐야지.
여승 女僧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늬 산山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금덤판: 금점판, 수공업 방식으로 작업하던 금광의 일터
*섶벌: 일벌
*머리오리: 머리카락
함주시초: 선우사膳友辭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바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쇠리쇠리하야: 빛이나 색채가 강렬하여 눈이 부셔. ‘부시다’의 평안북도 방언.
산중음山中吟: 산숙山宿
여인숙旅人宿이라도 국수집이다
모밀가루 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어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木枕들을 베여보며
이 산山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木枕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골과 생업生業과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
가무래기의 낙樂
가무락조개 난 뒷간거리에
빚을 얻으려 나는 왔다
빚이 안 되어 가는 탓에
가무래기도 나도 모도 춥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며
내 마음은 웃줄댄다 그 무슨 기쁨에 웃줄댄다
이 추운 세상의 한구석에
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얼마나 기뻐하며 락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 벼개하고 누어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이다
*뒷간거리: 가까운 거리
*빚: 햇빛
*능당: 능달. 응달.
*락단하다: 즐거워하며 손뼉을 치고
적막강산
오이밭에 벌배체 통이 지는 때는
산산에 오면 산 소리
벌로 오면 벌 소리
산에 오면
큰솔밭에 뻐꾸기 소리
잔솔밭에 덜거기 소리
벌로 오면
논두렁에 물닭의 소리
갈밭에 갈새 소리
산으로 오면 산이 들썩 산 소리 속에 나 홀로
벌로 오면 벌이 들썩 벌 소리 속에 나 홀로
정주定州 동림東林 구십九十여 리里 긴긴 하로길에
산에 오면 산 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제3인공위성
나는 제3인공위성
나는 우주 정복의 제3승리자
나는 쏘베트 나라에서 나서
우주를 나르는 것
쏘베트 나라에 나서
우주를 나르는 것
해방과 자유의 사상
공존과 평화의 이념
위대한 꿈 아닌 꿈들…
나는 그 꿈들에게서도 가장 큰 꿈
나는 공산주의의 천재
이 땅을 경이로 휩싸고
이 땅을 희망으로 흐뭇케 하고
이 땅을 신념으로 가득 채우고
이 땅을 영광으로 빛내이며
이 땅의 모든 설계를 비약시키는 나
나는 공산주의의 자랑이며 시위
공산주의 힘의, 지혜의
공산주의 용기의, 의지의
모든 착하고 참된 정신들에는
한없이 미쁜 의지, 힘찬 고무로
모든 사납고 거만한 정신들에는
위 없이 무서운 타격, 준엄한 경고로
내 우주를 나르는 뜻은
여기 큰 평화의 성좌 만들고저!
지칠 줄 모르는 공산주의여,
대기층을 벗어나, 이온층을 넘어
뭇 성좌를 지나, 운석군을 뚫고
우주의 아득한 신비 속으로
태양계의 오묘한 경륜 속으로
크게 외치어 바람 일구어
날아 오르고 오르는 것이여,
나는 공산주의의 사절
나는 제3인공위성
→ 프로파간다 그 자체인데 시는 참 기깔나게 썼네….
하 이거 실화임? 한국어가 아니라 다른 언어로 된 시를 읽는 것 같아. 지금 시 2개 읽었는데 시를 감상하는 게 아니라 문자 해석하기를 진행함. 어휘 카테고리에 모르는 단어들 다 넣으면 일주일 내내 이 시집만 붙들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안 쓸 거임 ㅎㅋ
세상에… 책 검사날에 친구1은 1시간 만에 읽으려다 실패해서, 친구2는 검사날이 다음날인 줄 알고 있어서 이월권 씀. 나는 전날 새벽 3시까지 꾸역꾸역 읽고 잤는데…. 억울한데? 억울하지 않은? 이? 느낌?
백석의 시는 해방 전후로 완벽하게 변모한다. 그는 해방 전에는 자연물과 고향을 주제로 시를 썼다면 해방 후에는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의 시를 썼다. 해방 전의 시는 고어, 한자어, 사투리 등등 이해하기 힘든 단어들의 향현이라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힘들여 이해하고 나면 무거운 적막과 향수를 불러일으켜 괜히 두 번 곱씹게 만드는 잔잔한 울림이 있다. 반면 해방 후의 시는 어려운 말들이 거의 없어 직관적으로 이해가 간다. 하지만 뭐랄까, 경망스럽고 깊이가 없다. 물론 여전히 표현력은 대단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이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석이 선동용 글에는 재능이 없는 것인지, 그 스스로에게 던진 공산주의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지 못해 제대로 시를 쓰지 못한 것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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