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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 갇힌 새
[1879년 10월 15일]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싶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고, 화창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올 것이다. 그래서 늘 변하게 마련인 우리 마음과 날씨를 생각해 볼 때,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1880년 7월]
나는 향수병에 굴복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네 나라, 네 모국은 도처에 존재한다고. 그래서 절망에 무릎을 꿇는 대신 적극적인 멜랑콜리를 선택하기로 했다. 슬픔 때문에 방황하게 되는 절망적인 멜랑콜리 대신 희망을 갖고 노력하는 멜랑콜리를 택한 것이다.
…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옳다고 해서 내가 점점 퇴보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바로 나올 수 있는 것이냐?
…
철새가 이동하는 계절이 오면 우울증이 그를 덮친다.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그를 새장에 가둔 아이들이 말한다. 벼락이 떨어질 듯이 어두운 하늘을 내다보는 그에게 자기 운명에 반발하는 외침이 들려온다. 나는 갇혀 있다! 내가 이렇게 갇혀 있는데 당신들은 나에게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한다. 바보 같은 사람들! 필요한 건 이곳에 다 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새처럼 살 수 있는 자유가 없지 않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
[1880년 11월 10~11일]
사랑에 빠질 때 그것을 이룰 가능성을 미리 헤아려야 하는 걸까? 이 문제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는 안 되겠지.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니까.
조용한 싸움
[1882년 1~2월]
아직은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온전히 표현할 수가 없다. 투박해야 할 부분은 충분히 투박하지 못하고, 섬세해야 할 부분 역시 충분히 섬세하지 못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어려움에 도전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1882년 3월 3일]
내가 예의범절을 까다롭게 따지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요령이 없다는 건 솔직히 인정한다. 하지만 그 대신 가난하거나 평범한 사람들과는 더 잘 지낸다. 앞의 사람들에게서 잃은 것을 뒤의 사람들에게서 얻는다.
[1822년 7월 21일]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가벼운 병 따위에 밀려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예술의 비위를 맞추겠다.
…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이 야망은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고, 열정이 아니라 평온한 느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따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도 내 안에는 평온함, 순수한 조화, 그리고 음악이 존재한다. 나는 이것을 가장 가난한 초가의 가장 지저분한 구석에서 발견한다. 그러면 마음이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런 분위기에 도달한다.
…
‘끈질기다’는 표현은, 일차적으로 쉼없는 노동을 뜻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에 휩쓸려 자신의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1822년 8월]
결국 이런 소박한 것들 속에는 웅대한 바다에 맞먹는 무엇인가가 있다.
…
그림 속에는 무한한 뭔가가 있다.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들지만 자기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건 정말 매혹적인 일이다. 색채들 속에는 조화나 대조가 숨어 있다. 그래서 색들이 저절로 조화를 이룰 때면 그걸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
[1882년 10월 22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도 않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복권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이 우리 눈에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음식을 사는 데 썼어야 할 돈, 마지막 남은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샀을지도 모르는 복권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그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의 고통과 쓸쓸한 노력을 생각해 보렴.
…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1883년 3월 21~28일]
살다보면 촛불을 끌 수도 있겠지. 하지만 미리 소화기를 들이대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1883년 7월 11일]
모든 사람이 모델을 알아보게 될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다. 세부사항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인물을 그 본질적인 특징에 따라 단순화할 것이다. 쉽게 말해 내가 그리려는 대상은 아버지의 초상이 아니라 병자를 방문하러 가는 가난한 시골마을의 전형적인 목사다. 이와 비슷하게 너도밤나무 숲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부부의 그림은 아버지, 어머니가 모델로 자세를 취해주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의 초상화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함께 늙어온 모습이다.
[1883년 8월 4~8일]
나는 이 세상에 빚과 의무를 지고 있다. 나는 30년간이나 이 땅 위를 걸어오지 않았나!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림의 형식을 빌어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다.
화가는 캔버스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1883년 12월 15일]
개는 이곳에 돌아온 걸 후회한다. 그들이 친절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황야를 떠돌 때도 이 집에서처럼 외롭지는 않았다. 불쌍한 짐승이 돌아온 것은 생각이 모자란 탓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1885년 4월 30일]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 진짜 이렇게 됐네 소름
[1885년 7월]
그러니 ‘그 이상 더 잘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런 그림은 우리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끔 이끌어주지 못한다.
생명이 깃든 색채
[1885년]
성당보다는 사람의 눈을 그리는 게 더 좋다. 사람의 눈은, 그 아무리 장엄하고 인상적인 성당도 가질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다. 거지든 매춘부든 사람의 영혼이 더 흥미롭다.
[1887년 여름~가을]
과거나 미래는 우리와 간접적인 관계밖에 맺지 않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서는 직접 행동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예술가가 되려는 생각은 나쁘지 않다.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억누를 수는 없지. 소망하는 것을 터뜨리기보다는 태워버리는 게 낫지 않겠니.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내게 구원과 같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테니까.
내 영혼을 주겠다
[1888년 6월 18일]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은 아직도 나를 황홀하게 하며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을 갖게 한다네.
[1888년 6월 23일]
지상에 머무르는 동안 지도 위에 검은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 마을이나 도시에 직접 가볼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나비가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무수한 별이 있을지도, 그리고 죽은 후에는 우리도 그곳에 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나.
[1888년 6월]
죽어서 묻혀버린 화가들은 그 뒷세대에 자신의 작품으로 말을 건다.
[1888년 8월]
이런 일이 우리 다음에도 계속될까 두렵다. 다음 시대의 화가들이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발판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너무 짧고, 특히 모든 것에 용감히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몇 년 되지 않는다.
[1888년 10월 27일]
형이 원한다면 날 위해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어. 그건 과거에 하던 대로 계속하는 것이지. 우리 주변에 예술가들, 친구들이 모여들게 하는 일 말이야. 나로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지만, 형은 프랑스에 온 이후 계속 해왔던 일이잖아. 예술가들이 길을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이 뒤따를 거야. 그렇잖아? 나 자신은 그렇다고 굳게 믿고 있어.
→ 이런 지지자가 있으면 뭔들 부럽겠어
[1889년 4월 21일]
아아, 내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기 힘들구나. 하지만 네가 내게 보여주었던 선량함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네가 그걸 가졌고 여전히 너를 위해 남아 있으니 말이다. 설령 물리적인 결과는 제로에 불과할지라도, 그래서 더욱더 많은 것이 네게 남을 것이다.
[1889년 5월 25일]
그림을 걸 때 「룰랭 부인의 초상」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해바라기 그림 두 점을 걸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마라. 그렇게 해서 세 그림이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노랑과 오렌지색으로 그려진 여인의 머리는 양쪽에 노란색이 가까이 있음으로 해서 더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고통은 광기보다 강하다
[1889년 12월]
사실 그 말은 꽤나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화가는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빠져 있는 사람이어서, 살아가면서 다른 것을 잘 움켜쥐지 못한다는 말.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사람
[고흐가 사망할 당시 지니고 있던 편지]
그런데 사랑하는 동생아, 내가 늘 말해 왔고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나는 네가 단순한 화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너는 나를 통해서 직접 그림을 제작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너에게 말할 수 있는 건, 죽은 화가의 그림을 파는 화상과 살아 있는 화가의 그림을 파는 화상 사이에는 아주 긴장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화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문장들이 참 유려하다고 느꼈다. 책을 쓰기 위해 힘들여 쓴 문장들이 아니라 편지글들이라는 것도 믿기 힘들었다. 내 편지들은 쿠꾸루삥뽕이얍헤헤헤 이딴 글만 적혀 있는데….
이 책 초반 부분의 편지 중 예술의 경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도’와 비슷한 부분이 느껴져 기시감에 멈칫멈칫했다. 무슨 분야든 한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결국 같은 것을 향해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고흐가 그림실력을 쌓아가는 과정이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준비보다는 수행을 하는 수행자처럼 느껴졌다.
고흐는 감수성이 너무 풍부하고 섬세해서 세상을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솔직히 평탄한 인생을 살 기회가 많았어서 스불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편지를 읽다 보니 이런 섬세한 사람이 (섬세하다? 박애주의적이다?) 그 일은 계속 한다고 행복했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가난으로 점철된 고흐의 인생이 그의 정신건강 측면에서는 가장 건강한 길이 아니었을까. 만약 고흐가 종교인의 길을 걷거나, 미술 도매상의 업을 계속 했다면 정신적인 붕괴가 훨씬 빨리 왔을 듯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또, 고흐와 테오와의 관계에서 고흐가 일방적으로 테오에게 의지하고 집착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편지들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테오의 편지에서는 진심으로 형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고흐가 테오한테 ‘너는 나를 통해서 직접 그림을 제작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완벽하게 동의한다. 테오 없이 고흐는 결코 작품들을 그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금전적인 이유에서건, 정서적인 이유에서건. 아, 그리고 왜 테오가 고흐를 그렇게 좋아했는지도 알 것 같다. 편지만 읽어도 고흐가 얼마나 선한…? 착한…? (어떤 단어가 적절한 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쨌든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로 수식 가능한) 사람인지 알 것 같다. 참 섬세하고… 유약하고… 그런데 고집있고… 낭만도 있고… “예술가”그 자체랄까….
고흐가 사망한 연도가 1890년도인데, 책을 읽으면서 편지 작성일이 이 연도에 가까워 질 때마다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아… 이제 곧… ㅠㅠㅠ 이러면서. 의외였던 게 1888년까지만 해도 고흐가 꽤 멀쩡한 정신이었다는 것이다. 2년 동안 급격하게 무너지는 고흐의 정신을 보면서 내가 다 슬펐다. 분명 초반까지만 해도 자신이 닿을 예술적 성취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숨기지 못하고 묘사하는 게 참 좋았는데, 그 2년 동안, 2년 동안! 그 반짝거리던 천진함이 사라져 가는 게 보여 가슴을 쥐어뜯었다. 고며들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너무 좋아서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대작을 그려냈다는 게 참 ㅠㅠ 이 그림바보같으니라고….
예상보다 좋았던 책이었다. 솔직히 편지라서 3시간이면 다 읽을 줄 알았는데, 고흐가 글을 너무 멋들어지게 써서 두 배 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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