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1
잠 자는 시간대 잘못 선택해서... 시간 때우려고 봄.
크랙이 유행하게 된 이유부터 퇴치를 위한 조치들까지 설명하는데, 총 세 명의 대통령이 등장한다.
레이건, 부시, 클린턴. ....^^ 엿같았음.
크랙이 유행하게 된 것은 레이건 정부 때이다.
본래 코카인은 높은 가격으로 인해 엘리트 계층에서 통용되던 마약이었는데, 미국으로 이것이 대량 유입되면서 가격이 하락하였고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코카인을 접하게 되었다. 가루로 유통되던 코카인은 정제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이 정제의 귀찮음을 해결하기 위해 고체 형태로 바뀌어 유통되었다. 고체형태로 바뀐 코카인을 크랙이라 부른다.
왜 코카인은 미국으로 대량 유입되었을까? 레이건 정부에서 지원하는 전쟁을 위한 자금 유통 과정에서 코카인의 유입을 눈감아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레이건 정부는 니카라과 독재 정권을 지원했는데, 미국 의회에서는 이를 반대했다. 의회의 반대로 공식적인 자금원이 막히자 레이건 정부는 이란에 불법적으로 무기를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 이란-미국-나카라과 이 세 국가의 유통 과정에서 고위 관료들의 묵인 하에 코카인이 밀반입되었다. 이로 인해 대량의 코카인이 미국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대량 유입된 코카인은 가격이 하락했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흑인들도 이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약에 중독된 이들은 계속계속 원하고... 계속계속 팔고...
마약을 팔아 급격히 부를 축적한 신흥 부자들은 자신들의 영역 확보나 보호를 위해 무장을 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총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러한 현상은 흑인 사회에서 매일 총격전이 발생하는 결과를 낳았다. 경찰들은 매일 시신을 수습했고, 사람들은 밤이 되면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경찰은 왜 시신 수습말고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나? 돈 먹고 눈감아주거나, 마약상의 마약을 갈취해서 지가 팔든가... 그래서....
렌 바이어스가 이러한 상황에 큰 전환점을 제공했다. 스포츠 스타인 그가 크랙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가능성이 추정된 것. 언론은 이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대며 크랙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크랙이 원인이 아닌 문제들까지도 크랙 탓을 하며!
Crack Kids가 대표적 예시. '크랙 중독아들 최악의 위협은 바로 엄마 자신'이라는 제목을 걸고, 크랙 중독아들이 10만 명씩 태어났다고 보도하고, 아이들이 학령에 달하자 크랙 중독아들이 빈민가 학교에서 60%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하면서. 실제로는 이 시기에 태어난 아이 중 2,3%만이 체내에서 코카인이 발견되었다.
이 외에도 '자식보다 크랙을 더 사랑하는 비정상적인 흑인 여성', '약 때문에 아이들을 내팽개치는 찌질한 약쟁이'등 흑인 여성을 범죄자로 만들기 위한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선거를 앞둔 정치권들은 마약 근절을 표어로 내세우며 마약 근절 여론에 합세했다. 민주당 공화당 구분없이 다~. JUST SAY NO! 낸시 레이건이 이끈 마약 거부 운동의 슬로건이다. 마약을 거부할 수 없게된 이들에 대한 구제책은 관심없이 그저 보여주기식의 운동. 굉장히 위선적이었다. 또한 1986년에는 마약 남용 방지법이 제정되었다. 최소의무형량을 규정하고 있는! (WOOOW) 이 법은 마약 판매상을 대상으로 했었으나 2년 후 법 개정으로 마약 소지자들도 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시켰다.
놀랍게도 지금까지의 내용 모두 레이건 정부 때의 일이다. 코카인 밀반입부터 마약 남용 금지법까지! (염병할 처음부터 안 들여왔음 됐잖아 싯팔 엿같게 진짜.) 심지어 마약 거부 운동을 했던 시기에도 코카인 밀반입은 계속되고 있었다. (마약~ 들여올 거지만~ 피는 너네가 등신~ 마약 중독된 사람~ 눈 앞에 마약이 있어도~ JUST SAY NO~~!!~!)
경찰들은 무력을 이용해 이 법을 시행했다. 억지쓰네? 싶을 정도로. 예를 들어 두 명이 체포 되었는데 한 사람에게서 크랙 10개가 발견되고 다른 한 사람에게서는 크랙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면, 둘을 반반 나누어 갖게 한다. 5개 5개 ^^ (염병 씹 ㅋㅋ) (아ㅓ 슬슬 작성이 귀찮다.)
다음 대통령인 부시, 그 다음 대통령인 클린턴까지 마약 근절을 강력해 외치며 체포에 체포를 거듭했다. 클린턴 정부 당시 투옥률은 급증했다. 아니.. 폭등했다. 1985년 16,600명의 흑인이 마약 혐의로 투옥되었는데, 10년 후인 1995년 투옥된 흑인 마약사범의 수는 134,000명이다. 707%가 증가하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크랙 사용자의 2/3가 백인이었는데 1988년 마약 남용 금지법 제정부터 1994년 클린턴의 범죄 법안 통과까지 LA에서 크랙 관련 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 받은 백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투옥률이 폭등하고.. 감옥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자 정부는 이걸 어떻게 해결했냐~ 민영화를 했다! 감옥을! ㅋㅋㅋㅋㅋ.... 감옥! 을 ㅋㅋ......
민영화의 결과는 뭐... 당연하다시피 서비스의 질은 곤두박질치고~ 감옥 사업자들은 로비를 해서~ 지원금 계속 타먹고~
염병할 ~ 염병할~ 염~병~할~
그나저나 넷플릭ㄹ스... 캡처 좀 하게 해 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