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haomoondo 2025. 6. 23. 16:35

2025.06.21: -어린애 같은 사람들 곁에서

2025.06.22: -끝.

 

친구가 고른 책. 언젠간 읽고 싶었지만 그 언젠가가 지금은 아니야...~

 

제1부

바라문의 아들

[25]

「자네가 왔군」싯다르타는 말하면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내가 왔네」고빈다가 말하였다.

→ 고빈다가 싯다르타 사랑하네

 

사문들과 함께 지내다

[29]

그는 자신의 자아로부터 슬그머니 빠져나와 수천 가지의 낯선 형체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으며, 짐승이 되고, 썩은 고기가 되고, 돌이 되고, 나무가 되고, 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매번 깨어나면서 다시 자기 자신을 발견하였다. 해가 비추거나 달이 비추었따. 그는 다시 자아로 돌아와 있었으며,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한 채 발버둥치고 있었으며, 갈증을 느꼈으며, 그 갈증을 극복하였으며, 또다시 새로운 갈증을 느꼈다.

 

[30]

그는 햇빛 속에서도, 달빛 속에서도, 그늘 속에서도, 또는 빗속에서도 또다시 자기 자신을 발견하였고 또다시 자아가, 싯다르타가 되어 있었으며 또다시 고통스러운 윤회의 업보를 느꼈기 때문이다.

 

[35]

그래서 난 이렇게 믿기 시작했네. 알려고 하는 의지와 배움보다 더 사악한 앎의 적은 없다고 말이야.

 

[41]

그 노인은 싯다르타가 발하는 마법의 힘에 맥없이 굴복당하고 말았다.

→???

 

고타마

[47]

싯다르타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이 분만큼 존경한 적이 없었으며, 어느 누구도 이 분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 싯다르타의 고빈다화.

 

[50]

이 순간 고빈다는 친구가 자기를 떠났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하였다.

→ 여기서 싯다르타가 고빈다한테 뽀뽀하면 데미안이죠.

 

[55]

세존이시여, 당신은, 당신이 깨달은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무에게도 말이나 가르침으로 전달하여 주실 수도, 말하여 주실 수도 없습니다.

→ 그건 맞지

 

깨달음

[63]

이 세상이라는 책과 나 자신의 본질이라는 책을 읽고자 하였던 나는 어떠하였는가. 나는 내가 미리 추측한 뜻에 짜맞추는 일을 하기 위하여, 기호들과 철자들을 무시해 버렸으며, 이 현상계를 착각이라 일컬었으며, 나의 눈과 혀를 우연하고 무가치한 현상이라고 일컬었다. 아니, 이런 일은 지나가 버렸으며, 나는 미몽에서 깨어났다. 난 정말로 미몽에서 깨어났으며, 오늘에야 비로소 다시 태어난 것이다.

 

[66]

자기를 빙 둘러싼 주위의 세계가 녹아 없어져 자신으로부터 떠나가 버리고,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홀로 외롭게 서 있던 이 순간으로부터, 냉기와 절망의 이 순간으로부터 멋어나, 예전보다 자아를 더욱 단단하게 응집시킨 채, 싯다르타는 불쑥 일어났다.

 

제2부

카말라

[76]

그는 고빈다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그는 고빈다를 자기 품에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였다. 그런데 자기가 품에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고 있는 사람은 이제 보니 고빈다가 아니라 어떤 여인이었다.

→ ??? 뭐야 진짜 둘이 사랑이네???????

 

[77]

물론입니다.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온다!> 이것도 강으로부터 배운 것이지요. 사문인 당신도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자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당신의 우정을 뱃삯으로 받은 걸로 해둡시다. 신들에게 제사를 올릴 때 나를 잊지 말고 내 몫도 함께 빌어주길 바라겠습니다

→ 뱃사공이 싯다르타보다 더 깨달음을 얻은 듯

 

 

[81]

저녁 무럽 그는 한 이발소 조수와 사귀게 되었다.

→ 순간 (애인을) 사귀다인 줄;

 

[86]

사랑이란 구걸하여 얻을 수도 있고, 돈을 주고 살 수도 있고, 선물로 받을 수도 있고, 거리에서 주워 얻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강탈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은 잘못된 길을 생각해냈던 거예요. 그래요, 만약에 당신처럼 예의 바른 젊은이가 그런 잘못된 방식으로 일을 저지르려고 한다면 그건 유감스러운 일이 될 거예요.

 

[87]

내가 시를 한 수 지을 터이니 그 대가로 나에게 입맞춤을 한 번 해주겠소?

→ 개저의 환상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91]

나는 당신이 그의 하인이 되는 것은 원치 않아요. 그와 동등한 사람이 되세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신한테 만족하지 못할 거예요.

→ 카밀라 언니 넘 제 취향이시네요

 

[93]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안다면, 마술을 부릴 수 있으며, 자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소

⇒ 아름다운 여인에게 사랑을 배우고 그 배움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나쁘지 않은 흐름인데 왜 묘하게 별로지 ㅋㅋㅋ 왜?? 젖가슴 어쩌구하는 게 나와서 그런가.

 

어린애 같은 사람들 곁에서

[97]

예컨데 싯다르타가 단식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당신한테서, 아니면 다른 데서라도 오늘 당장 아무 일자리건 얻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배가 고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테니까요. 그렇지만 싯다르타는 이렇게 태연하게 기다릴 수 있으며, 초조해하지도 않고, 곤궁해하지도 않으며, 설령 굶주림에 오래 시달릴지라도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나으리, 단식이란 그런 데에 좋은 것입니다

 

[103]

제게 만약 카마스와미였다면, 쌀 구매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안 즉시 잔뜩 화가 치밀어서 황급히 되돌아와버렸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말로 시간과 돈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자초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좋은 나날을 보냈으며, 배움을 얻었으며, 기쁨을 누렸으며, 분노와 성급함 때문에 제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 싯다르타의 관점에서 보는 싯다르타는 내면의 혼란에 휩쓸리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타인이 보는 싯다르타는 고고하고 깨달음을 얻은 자처럼 보이는 이 차이가 흥미롭다. 그리고 전 챕터에서는 카밀라와의 관계?랄까… 카밀라에게 접근한 의도…?랄까… 별로였는데 이 챕터에서는 수행의 동지처럼 느껴져서인지 둘의 관계에 불쾌감이 많이 사라짐.

 

윤회

[124]

이런 유희야말로 바로 윤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어린 애들의 유희인 것이다. 아마도 한 번, 두 번, 열 번 정도는 애정을 지니고 놀아볼 만한 유희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러나 계속하여 언제까지나 영원히 그 유희를 반복한다면 과연 어떨까?

→ 유중혁이 정병에 걸린 이유

 

[125]

카말라는 사람들을 시켜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지 않았다. 그녀는 싯다르타가 사라져버렸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일을 항상 기다려오지 않았던가? 그는 사문이며, 집 없는 떠돌이이며, 순례자가 아니던가? 그녀는 그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런 사실을 가장 뼈져리게 실감하였었다.

→ 카말라 언니 당신이 너무 좋아요

 

강가에서

 

뱃사공

[155]

이보세요, 나는 학자도 아니고, 말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사색할 수 있는 능력도 없어요. 나는 단지 남의 말을 경청하는 법과 경건해지는 법만을 배웠을 뿐, 그 밖에는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어요. 만약 내가 그것을 말하고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러면 아마 나는 현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소. 그러나 그런 능력이 없으므로 한낱 뱃사공에 불과한 것이오.

→ 이 이후에 뱃사공은 사색하는 법을 배우고, 싯다르타는 경청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둘 다 부처의 경지에 오르게 된 것일까.

 

[168]

싯다르타는 밖으로 나가 강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과거라는 파도에 씻겨 넘어지면서, 자기가 살아온 인생의 모든 시간들과 접촉함과 동시에 그 시간들에 에워싸인 채, 오두막 앞에 앉아 꼬박 밤을 지새웠다.

 

[169]

그래요, 도대체 내가 슬퍼해야 할 까닭이 뭐가 있겠습니까? 부유하고 행복하였던 내가 지금은 훨씬 더 부유하고 훨씬 더 행복해졌습니다. 아들을 선물로 받았으니까요.

→ 찌ㅣ발 ㅠ 카말라가 죽었는데? 근데? 안 슬퍼? 나는 이렇게 슬픈데?

 

아들

[171]

싯다르타는 자기 아들이 옴으로서 자기에게 행복과 평화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고통과 근심 걱정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소년을 사랑하였으며, 그 소년이 없이 평화와 행복을 누리느니 차라리 그 소년 때문에 사랑의 고통을 겪고 사랑에서 비롯된 근심 걱정을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였다.

→ 여기서 기독교와의 차이점이 느껴진다. 기독교였으면 하나님에게 닿기 위한 고난과 시련-퀘스트의 일종-으로 바라봤을 것 같은데 불교는 그런 게 없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겪어야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없다.

 근데 이거랑 별개로, 자식이란 존재가 그렇게 사랑스러운가? 심지어 싯다르타는 자기 아들을 키운 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뿅하고 생긴 거잖아… 왜 사랑스러운지도 모르겠고, 사랑스러워도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운가 싶고. 근데 이렇게 사랑할만한 존재가 있는 게 부럽기도 하다. 울 엄마아빠는 나를 이렇게 생각할까….?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175]

그렇잖아도 부드러운 마음씨를 갖고 있지 않은 그 아이를 내가 어떻게 그런 세계로 내보낼 수가 있단 말입니까?

→ 자식객관화가 잘 되는 편

 

[189]

이 모든 충동들, 이 모든 어린애 같은 유치한 짓들, 이 모든 단순하고 어리석은, 그렇지만 어마어마하게 강한, 억센 생명력을 지닌, 끝까지 강력하게 밀어붙여 확고한 자리를 굳히는 충동들과 탐욕들이 싯다르타에게는 이제 더 이상 결코 어린애 같은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는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무한한 업적을 이루고, 여행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무한한 고통을 겪고, 무한한 고통을 감수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을 사랑할 수 있었으며, 그는 그들의 모든 욕정들과 행위들 하나하나에서 바로 생명, 그 생동하는 것, 그 불멸의 것, 범(梵)을 보았다. 그런 인간들은 바로 그들의 맹목적인 성실성, 맹목적인 강력함과 끈질김으로 인하여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고 경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 아 이 부분 너무 좋았는데 토론 때 깜박하고 말을 못 했네. 싯다르타가 드디어 오만함을 버리고 모든 존재를 사랑하게되는, 이 깨달음이 너무(positive) 좋았음…♥ 자신에게는 유치하고 어리석어 보이던 그 충동과 탐욕이 인간을 가장 빛나게 만드는 요소들이고 인간들은 그 빛을 위해 기꺼이 그 고통을 감수하고 발한다는 이게… 너무나도 아름답잖아…. 인간찬가를 이렇게 멋진 문장으로 표현해 주잖아…. 한없이 좋다….

 

[194]

싯다르타는 바주데바가 이처럼 귀기울여 듣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하게 느꼈다. 그는 자신의 고통과 온갖 불안한 마음이 바주데바를 향하여 흘러들어갔다가 다시 자기를 향하여 되돌아 흘러나오고 있음을, 그리고 자신의 은밀한 희망이 그한테 흘러들어갔다가 다시 자기를 향하여 되돌아 흘러나오고 있음을 느꼈다. 자기 말에 귀기울이는 이런 사람에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마치 그 상처를 강물에 넣어 씻어서 결국은 상처가 아물어 강물과 하나가 되는 것과 똑같은 일이었다.

→ ‘경청’의 최고단계를 싯다르타가 경험하고 있구나

 

[194]

그러는 동안 싯다르타는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이 사람이 이제 더 이상 바주데바가 아니요, 이제 더 이상 인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귀기울여 듣고 있는 이 사람이 스스로의 내면으로 마치 한 그루 나무가 빗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자기의 고백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이 사람이 바로 신 그 자체라는 것을, 이 사람이 바로 영원한 존재 자체라는 것을, 점점 더 강하게 느꼈다.

→ 내 애정캐가 잘 되는 걸 보니 좋다

 

고빈다

[206]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 내가 깨달은 최고의 생각이란 이런 거야. <모든 진리는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진리이다! 좀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렇네. <진리란 오직 일면적인 때에만 말로 나타낼 수 있으며, 말이라는 겉껍질로 덮어씌울 수가 있다.>

 

[211]

한 개의 돌멩이를 나는 사랑할 수 있어, 고빈다, 그리고 나무 한 그루 또는 나무 껍질 한 개도 사랑할 수 있고. 그것들은 사물이며, 그리고 우리는 사물을 사랑할 수가 있지. 그렇지만 나는 말은 사랑할 수가 없지. 그 때문에 나에게는 가르침이라는 것이 아무 쓸모가 없는 거야. … 고빈다. 우리가 열반이라고 부르는 것,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 다만 열반이라는 단어만이 존재할 뿐이지.

→ 어렵다. 알쏭달쏭. 알 듯 말 듯.

 

[214]

나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 나는 내가 고타마와 의견이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 분이 어떻게 사랑을 모르실 수 있겠는가. 무릇 인간 존재라는 것이 덧없고 허무하다는 것을 인식하셨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중생을 그토록 사랑하셔서, 온통 노고로 가득 찬 길고도 긴 한평생 동안 오로지 인간 중생을 도와주고 가르치는 데 온 힘을 다 쏟으셨던 그 분이 아닌가! 그 분, 즉 자네의 그 위대한 스승의 경우에 비추어보더라도 나에게는 말보다는 사물이 더 마음에 들며, 그 분의 행위와 삶이 그 분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며, 그 분의 손짓이 그 분의 사상들보다 더 중요해. 나는 그 분의 위대성이 그 분의 말씀, 그 분의 사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분의 행위, 그 분의 삶에 있다고 생각해.

 

[219]

그는 이 모든 형상들과 얼굴들이 각각 서로서로 도우면서, 서로서로 사랑하면서, 서로서로 미워하면서, 서로서로 파멸시키면서, 서로서로 새로운 생명체를 잉태시키면서 서로간에 수천 가지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형상들과 얼굴들 하나하나가 모두 다 일종의 죽음에의 의지였으며, 덧없음에 대한 심히 고통스러운 고백이었다. 그렇지만 그 어느 것도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 모두는 단지 모습을 바꾸고 있었을 뿐이며,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났으며, 그때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의 얼굴과 다른 얼굴 사이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가로놓여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이 모든 형상들과 얼굴들은 멈추어 서기도 하고, 흘러가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떠내려가기도 하다가 마침내 서로 뒤섞여 하나가 되어 도도히 흘러가고 있었다.

 

 

감상평

 대사에 “”를 안 쓰고 「」이걸 써서 신기했음. 불교 사상에 서양적 사고방식이 첨가되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어떤 부분이 서양적인지는 모르겄다. 저슽으 삘링~… 인상깊었던 부분 옮겨적는데 자꾸 오타나서 ~했따. 이딴 식으로 타자 쳐 지는데 경건하고 철학적인 문장에 ~했따. 이런 식의 어미가 붙으니깐 자꾸 분위기 깸;

 싯다르타보다 더 매력적인 캐가 둘이나 있어서 싯다르타한테 정이 많이 간 건 아니었지만, 싯다르타의 깨달음은 참 좋았다. 근데 싯다르타가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놓을 수 있었던 게 ‘오만’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태어날 때부터 떠받들어져 형성된 가치관은 참 고치기 힘들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럼.

 내 애정캐(뭔가 불경스러운 단어선택같다)는 카말라랑 바주데바. 카말라를 깨달음을 위해 이용되는 장치-인격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사물같은 캐-일 줄 알았는데 싯다르타랑 만난 초반에 그와 다른 방면으로 비슷한 수준의 구도자로 표현이 되어서 놀랐음. 좋았고. 카말라를 떠올릴 때는 씩 웃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엄청난 미녀가 흐릿하게 떠오르는데 그래서인지 카말라가 나올 때마다 내가 웃고 있더라 ㅎㅋ. 바주데바는 묵묵한 수행자인 점이 정말 좋았다. 무협에서 종종 등장하는 은둔고수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 그리고 깨달음의 수단?이 강이라는 것도. 약간 도교적 색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자연+묵묵함+중요해보이지않았던역할이사실은중요했다 하는 요소들이 혼합되어 내 심장을 attack.

 아들 나오는 부분에서, 자식새끼 키우기 참~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속 썩이고 나서야 자기 아버지 생각나는 건… 참… 싯다르타 못난 자식이다 증말. 싯다르타가 아들을 찾으러 뒤쫓아 갔다가 못 만난 부분에서, 싯다르타가 과거의 아버지와 유사한 상황을 겪는 것 같은데 그럼 싯다르타의 아버지도 싯다르타를 찾으러 나갔을 수도 있었겠다는 추측을 했다. 이게 맞다면… 난 아버지가 싯다르타를 결국 찾지 못해 느꼈을 슬픔이 떠올라… so sad… 싯다르타의 아버지도 싯다르타처럼 싯다르타를 찾으러 왔다가 깨달음을 얻었다면 좀 덜 슬플 것 같지만 만약 못 얻었다면? 내 가슴 찢어져. 뭔가 이것저것 쓸 게 더 많았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남. 나중에 떠오르면 그 때 써야지.

 내용적인 면 말고 필력, 문장력은 정말 훌륭했음. 어떤 종교든 그렇겠지만 종교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고자 하면 어렵고 뜬구름 잡는 듯하게 될 때가 많은데 정말 쉽고 꽤나 이해하기 쉽게 노력한 것 같아서 좋았다. 데미안은 한 5년 전 쯤 봐서 지금과 비교하기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겠으나 나는 데미안보다 싯다르타가 더 쉽게 읽혔음. 책 자체는 박진감 넘치지 않고 잔잔해서 내 취향은 아니지만 좋은 책이고 잘 만들어졌다. 독서모임 책이라 정말 다행이다. 정말 좋은 책이지만 혼자 읽었으면 읽다가 닫아버렸을 것 같다.

 

 

어휘

  • : 불교의례나 수행 과정에서 염송하는 진언의 최초 소리로 귀명 · 비로자나불 등을 상징하는 불교진언.
  • 멸각: 조금도 남기지 않고 없애 버림.
  • 비아: 나 밖의 모든 것. 자아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모든 세계와 자연을 이른다.
  • 서조(犀鳥): 코뿔새
  • 피안: 사바세계 저쪽에 있는 깨달음의 세계
  • 무화되돠: 없는 것으로 되다.
  • 차안: 나고 죽고 하는 고통이 있는 이 세상.
  • 향응: 특별히 융숭하게 대접함. 또는 그런 대접
  • 범(梵): 인도(印度) 브라만교(Brahman敎)의 최고(最高) 원리(原理)로서 세계(世界) 창조(創造)의 근원(根源).
  • 미망: 사리(事理)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 또는 그런 상태(狀態).